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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미래가 꼬여버렸다

제 1장: 되감긴 시간

digitalforest 2025. 4. 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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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은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다. 회색과 검은색의 얼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한가운데를 벌거벗은 형광등 하나가 힘없이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아래, 김지훈은 누워 있었다. 마른 몸에 힘없이 걸친 티셔츠는 목 부분이 늘어나 있고, 알 수 없는 얼룩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방 안은 퀴퀴한 냄새와 함께 쌓인 영수증, 먹다 남은 라면 봉지들로 지저분했다.

망했다. 완벽하게, 철저하게.

서른아홉, 인생의 정점에서 추락한 것은 아니었다. 김지훈의 인생은 정점이라는 것 자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저 평범했다. 아니, 평범함 아래를 맴돌았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작은 사업은 빚만 남기고 두 손 들었고, 그 빚 때문에 사랑했던 연인과의 관계도 파국을 맞았다. 점점 연락이 뜸해진 가족들은 그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한숨부터 쉬었다. 친구들은 걱정하는 척했지만, 그 속에는 '나는 너 같지 않아서 다행이다'는 안도감이 섞여 있는 듯 보였다. 하다못해 재미 삼아 사봤던 로또 한 장조차 그에게 행운을 허락하지 않았다.

숨이 가빠왔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낡은 방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끝나는구나.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후회와 절망, 그리고 간절한 바람이 뒤섞였다. 한 번만. 단 한 번만 기회가 더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실패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다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전부 되돌릴 수만 있다면... 딱 10년 전으로... 제발...

어둠이 밀려왔다. 싸늘한 감각. 그리고—

강렬한 햇살이 눈꺼풀을 파고들었다. 따뜻하고, 눈부셨다.

김지훈은 눈을 번쩍 떴다. 처음에는 강렬한 빛에 눈을 찡그렸고, 이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당황했다. 천장이었다. 곰팡이 하나 없이 깨끗한 하얀 천장.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은 아까 그 칙칙한 형광등 빛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생했다.

"...? 여기가... 어디지?"

몸을 일으켰다. 낯설지만 익숙한 감각. 파삭 말라버린 몸이 아닌, 탄탄하고 활력 있는 느낌이었다.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거칠고 푸석했던 피부 대신, 젊고 부드러운 살결이 손끝에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낡았지만 정돈된 방. 벽에 붙은 촌스러운 포스터, 책상 위 쌓인 전공 서적들...

"이 방은...?"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하나. 10년 전, 그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얻었던 첫 번째 자취방.

설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두근거림이었다. 옆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낡았지만 낯익은 기종이었다. 액정을 켰다. 화면에 뜬 날짜.

'2014년 7월 15일'

시간은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2014년...?"

그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믿을 수 없었다. 꿈인가? 너무나 생생한 꿈?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10년 전, 서른이 갓 넘은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젊고, 주름 하나 없는 피부. 조금은 멍해 보이지만, 아직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얼굴.

눈물이 차올랐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진짜... 진짜 돌아왔어...

침대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죽음 직전의 절망은 현실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이 낯선 익숙함이 현실이었다. 믿기 힘든 기적. 그는 기회를 얻었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머릿속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지난 10년간의 기억들이 조각들처럼 떠올랐다. 어떤 사업이 망했고, 어떤 기술이 유행했으며, 어떤 인물이 성공했고, 어떤 사건이 터졌는지. 뒤죽박죽이었지만, 분명한 정보들이었다.

그래! 이 시기에 투자했으면 대박 났던 그것!

가장 먼저 머리에 스쳐 지나간 것은 특정 주식 종목의 이름이었다. 분명 2014년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몇 년 안에 수십, 수백 배의 수익을 안겨줬던 그 종목!

김지훈의 눈빛이 달라졌다. 절망의 흔적은 사라지고, 강한 의지와 함께 알 수 없는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실패한 김지훈이 아니었다. 그는 미래의 정보를 손에 쥔 회귀자였다.

이번에는 달라. 전부 바꿀 수 있어. 그 지긋지긋한 실패 인생은 끝이야.

책상 서랍을 뒤져 낡은 통장과 도장을 꺼냈다. 잔고는 많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에게 많은 돈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 정도면 시작할 수 있다. 이 돈으로 씨앗을 뿌리고... 미래 정보를 활용하면...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고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익숙하지만 왠지 어색한 UI. 검색창에 특정 주식 종목 이름을 빠르게 입력했다. 'XX전자 주가', 'YY바이오 전망'.

찾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 종목!

화면에 현재(2014년)의 주식 가격이 떴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의 숫자를 확인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미래의 가격과 비교하며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흐흐... 그래, 이거였어. 지금 가격은... 이 정도면 충분히 사들일 수 있어."

첫 단추는 이거다. 이 주식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그다음은 사업을 키우고, 피해야 할 인물들을 피하고, 잡아야 할 기회들을 잡는다. 그의 머릿속에서 미래 계획이 빠르게 재구성되었다. 완벽했다.

김지훈은 벌떡 일어섰다. 몸이 가벼웠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희망과 기대감에 온몸이 뜨거웠다. 이제 망설일 시간은 없다. 기회는 지금이다.

옷을 대충 걸치고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장 앞에서 익숙한 운동화를 집어 들었다. 끈을 풀고 발을 넣으려는데 문득...

기억과는... 아주 미묘하게 달랐다. 디자인이 살짝 다른가? 색깔이 이 색이었나?

아주 짧은 순간의 위화감이었다. 하지만 곧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0년이나 지난 기억이니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사소한 것까지 전부 똑같을 리는 없지.

'뭐, 상관없겠지.'

그는 신발 끈을 묶고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웠다. 그리고... 열었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익숙했지만 동시에 낯선 세상. 2014년의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다.

"기다려라, 성공적인 미래! 내가 간다!"

힘찬 발걸음으로 문밖을 나섰다. 그의 그림자가 햇살 아래 길게 드리워졌다.

이번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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